전주이씨들이 살았던 '이목대'

梨木臺, Imokdae
완산구 교동 1-3




지금은 기린대로로 오목대와 이목대가 나뉘어져 있지만, 원래는 ‘자만동’으로 같은 동네이다.

1930년대 전라선 철도가 지나가면서 맥이 끊어졌고, 철로가 이사 간 이 후 기린대로가 생겼다.

자만동은 전주이씨가 자리를 잡고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 이안사가 살았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종이 친필로 쓴 ‘목조대왕 구거유지’(穆祖大王舊居遺趾)라는 비각이 서 있다. “목조대왕이 전에 살았던 터”라는 뜻이다.

지금은 산비탈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으며, 비각이 집들에 에워싸여 있다. 이안사와 얽힌 재미난 일화가 전하고 있다.



어린 시절 이안사는 아이들과 함께 전쟁놀이를 하면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났고, 아이들은 안사를 호랑이에게로 떠밀었다. 안사와 마주친 호랑이는 겁을 내고 도망쳤고, 이때 갑자기 섬광과 귀를 찢는 굉음이 들렸다.

안사가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이 있던 동굴은 벼락을 맞아 온데간데 없어졌고, 호랑이도 사라지고 없었다. 이일로 인해 이안사는 성내 아이를 죽인 자라하여 주민들의 원성을 샀고 그 뒤에도 전주목사와 사이가 나빠져 전주를 떠나는 원인이 됐다.

1270년 이 지역 토착세력이었던 이안사는 당시 전주목사와 관청의 기생문제로 대립하다가 170여호의 주민들을 거느리고 외가가 있던 삼척현으로 옮겨갔다고 전한다. 그는 다시 삼척 현에서 17년을 살다가 함경도 의주로 이주한 뒤 그곳에서 원나라에 귀부했다. 그 뒤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이 다시 고려에 귀부할 때 까지 함흥일대를 다스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트위터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