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스런 터에 지은 '경기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102 063-281-2790
성인 3,000원(전주시민 1,000원) 09:00~18:00




‘경사스런 터에 지은 궁궐’이 라는 뜻을 지닌 경기전은 조선이 건국되자 왕권의 권위를 만방에 떨치기 위해 세워 졌다. 이를 위해 나라를 처음 세운 임금의 초상화를 모셨다. 새로운 왕조가 태어난 경사스러운 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태종 10년(1410년), 조선 태 조 이성계의 어진(御眞, 임금의 초상화)을 보관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건됐다. 태조어진은 국보 317호로 지정돼 있다. 이곳의 태조어진은 1872년 서울 영희전의 영정을 초상화의 대가인 운계 조중묵이 모사한 것으로 현존 하는 유일한 태조 어진이다.

조선시대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태조진전(眞殿, 왕의 초상화를 모시는 곳)은 당시 조선팔도 중 다섯곳에 세웠다. 왕실 의 본향인 전주, 태조가 태어난 영흥, 태조의 구택(舊宅)이자 고려수도였던 개성,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 세웠다.

어진을 모신 진전을 세워 백성들에게 오랫동안 국가의 시조(始祖)를 잊지 않고 경모하게 하는 한편, 옛 왕조의 도읍에 진전(어진을 모시는 곳)을 건립하여 그 곳 백성들의 소외감을 지지로 이끌어 내려는 정치적 의도도 있었다.

태조어진의 보관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면서, 왜군에 의해 경기전이 처참하게 불에 타고 말았다. 다행히 어진이라도 사전에 옮길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경기전이 불에 타자 태조의 영정은 정읍-아산-강화-묘향산 등지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다 광해군 6년(1614년) 가을에 관찰사 이경진이 경기전을 다시 짓고 어진을 비로소 모셨다.

경기전이 결정적으로 훼손된 것은 일제강점기때다. 일본인은 경기전의 서쪽 반절을 드러내고 그곳에 일본인 전용 수상소학교를 세웠다. 해방 이후 중앙초를 인근으로 옮기고 수년간에 걸려 옛 경기전을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기전은 '명성황후’,‘용의눈 물’, '궁’등 드라마 촬영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매년 음력 9월9 일에는 조경묘·경기전 중양대제가 열리는데, 전국에서 2천여명의 종친과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조경묘 肇慶廟

경기전 경내 북쪽에 위치. 조선 시대에, 종친의 먼 시조(始祖)인 신라 사공공(司空公)의 위패(位牌)를 모시던 곳.

경기전 내 북쪽에 위치한 조경묘는 전주이씨 시조인 이 한(李翰)과 시조비 경주김 씨의 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1973년 지방유형문화재 제 16호로 지정됐다.
이한은 태조의 21대조로서 신라시대 사공(司空)을 지냈으며, 경주 김씨는 신라태종 무열왕 10세손 딸이다.

조경묘는 조선 왕조의 시조를 모신 장소답지 않게 규모는 작지만 홍살문, 외삼문, 내삼문이 있고, 내부에는 신이 오가는 신도(神道)와 향로가 놓여 있는 등 왕실의 법도를 따르고 있다.

조경묘가 탄생된 배경은 이렇다. 이득리 등 7도 유생들이 “중국의 경우 하(夏), 은(殷), 주(周) 세나라가 모두 국조(國祖)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조선왕조만이 시조인 사공공(司空公)에게 제사를 지 내지 않는 것은 법도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고 영조에게 상소를 올렸다.

이에 조정에서는 즉시 조경묘 건립에 착수해 1771년(영조 47년)에 완공됐다. 영조는 시조와 시조비의 위패를 만들어 친필로 신위를 쓰고 제사를 모신 다음 그 위패를 전주로 내려 보내 묘우(廟宇, 신위를 모신 집)에 봉안케 했다.



○하마비 下馬碑

경기전 앞 조선시대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놓은 석비.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

경기전 앞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암수 두 마리의 돌 사자상이 비석을 받치고 있는데, 지방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으로, 흰 대리석 돌기둥에 새겨진 두 행(行) 열 자(子)로 이루어져 있다.

지차개하마(至此皆下馬) 이곳에 이르렀거든 모두 말에서 내리라
잡인무득입(雜人毋得入) 잡인들은 출입할 수 없다.

비석의 글귀는 임금의 어진이 모셔진 신성한 곳이니 이곳에 이르는 자는 지위의 높고 낮음의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은 애초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다.

언뜻 보면 이 두 마리 돌짐승이 해태상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자다. 입을 벌리고 있는 사자는 아금강이며 수놈이고, 입을 다물고 있는 사자는 음금강으로 암놈이다. 암수 사자 한쌍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면서 경기전을 지키는 것이다. 소임이 막중해서인지 바라보고 있는 시선에 긴장감이 충만하면서도 얼굴에 능청스러움이 묻어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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